컴컴한 방구석에서 시작된 가장 소박한 몸짓
어린 시절, 눈앞의 사물들이 기괴하게 번져나가는 비현실적인 환각을 마주할 때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습니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고 거대하게 흘러가는데, 자신은 그 속도를 도저히 따라잡지 못하는 낙오자 같았지요. 하지만 그녀는 완전히 무너지기 직전, 방구석에서 가만히 손가락을 움직여 작은 연필 한 자루를 쥐었습니다. 그리고 눈앞을 잔인하게 어지럽히는 그 잔상들을, 흰 종이 위에 동그라미 모양의 점으로 하나씩 찍어 기록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찍은 첫 번째 점은 거창한 예술적 성취를 위한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저 숨이 막혀오는 순간을 간신히 버텨내기 위해, “내가 지금 여기에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증명하려는 가장 작고 소박한 몸짓이었습니다. 점을 조용히 찍어내는 그 찰나의 순간만큼은, 이상하게도 머릿속을 괴롭히던 소음들이 고요하게 가라앉았습니다. 그렇게 매일 방에서 동그라미를 그리며 아주 작은 행동의 기록을 이어간 그녀는, 먼 훗날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의 마음에 치유의 빛을 전하는 거장, 쿠사마 야요이가 되었습니다.
1.나를 지켜낸 첫 번째 작은 촛불의 기록
세상을 뒤흔든 화려한 설치 미술도, 그 시작은 결국 컴컴한 방에서 홀로 손가락을 움직여 조그만 점 하나를 찍었던 아주 작은 반복의 힘이었습니다. 그녀에게 그 작은 동그라미들은 자신을 파괴하려는 짙은 어둠 속에서 스스로 켜 올린 첫 번째 촛불이었던 셈입니다. 종이 위에 연필 끝이 닿을 때의 사각거리는 질감, 손끝에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을 가만히 느끼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흩어지던 마음의 조각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었습니다. 문득 “어쩌면 나도, 이 조그만 무언가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몰라”라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아주 조심스럽게 피어오르는 순간이 있습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던 깊은 밤을 지나, 아주 미세하지만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가녀린 의지가 고개를 드는 찰나 말입니다. 대단한 반전을 꿈꾸며 당장 내일부터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겠다는 과격한 결심은 잠시 내려놓아도 좋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눈부신 도약이 아니라, 내 손으로 직접 다듬어볼 수 있는 아주 작은 감각 하나입니다.
오늘 하루 내 손끝으로 찍어보는 작은 점 하나
이 이야기를 조용히 건네는 이유는, 당신에게 지금 당장 거창한 무언가를 창작하거나 치열하게 살아가라고 재촉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다만, 당신의 하루에도 스스로를 달래줄 수 있는 ‘아주 작은 점 하나’를 찍어보기를 권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일이 결코 아닙니다. 아침에 눈을 떠 침대 시트의 구겨진 모퉁이를 가만히 손바닥으로 다듬는 일, 시린 손을 녹여줄 따뜻한 물 한 잔을 아주 천천히 음미하며 마시는 일, 혹은 책상 위에 어지럽게 흐트러진 볼펜들을 나란히 정렬해 두는 일처럼 지극히 사소한 행동입니다. 조금 더 마음의 틈이 생겼다면, 작은 노트의 첫 페이지에 오늘 날짜와 지금의 날씨를 단 한 줄로 적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혹은 방바닥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물건 하나를 집어 원래 있어야 할 제자리에 가만히 놓아두는 일도 훌륭한 시작입니다. 내 시선이 닿는 곳을 아주 조금만 정돈하는 것, 내 몸이 머무는 공간의 아주 작은 일부를 내 손으로 직접 변화시키는 그 감각 자체가 우리 마음의 굳은살을 부드럽게 녹여내는 지극히 다정한 손길이 됩니다.
잃어버렸던 내 삶의 통제권을 복원하는 시간
이 보잘것없는 움직임들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힘없이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삶이 무거워지는 속성은, 내 일상의 통제권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거대한 무력감에서 비롯됩니다. 반대로 내가 내 주변의 작은 공간이나 사소한 행동 하나를 내 의지대로 제어하기 시작할 때, 잃어버렸던 삶의 주도권은 아주 미세하게 복원되기 시작합니다. 내 손으로 직접 이불을 개고, 내 호흡으로 컵을 씻어내는 그 짧은 감각의 기록들은 나를 서서히 일으키는 거룩한 시작이 됩니다. 내가 움직인 만큼 공간이 깨끗해지고, 내가 멈춘 만큼 호흡이 잔잔해지는 이 당연한 인과관계를 온몸으로 다시 체득하는 과정입니다. 어쩌면 그동안 우리는 스스로에게 너무 혹독한 기준을 들이대며 마음의 문을 더 굳게 닫아걸었을지도 모릅니다. 단숨에 어둠을 몰아내려 하기보다, 지금 당장 켤 수 있는 아주 조그만 성냥불 하나를 조심스럽게 받쳐 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 작은 불씨가 어두운 방 안의 가구들을 어렴풋이 비추듯, 당신의 내면에도 아주 부드러운 안도감이 차오르기 시작할 것입니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으니, 우리만의 속도대로
오늘 밤에는 이 다정한 다짐 한 조각만 가만히 품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내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창문 틈으로 가만히 새어 드는 새벽빛을 향해 손가락을 가볍게 움직여보는 것부터 시작해도 좋습니다. 당신이 소박하게 채워갈 그 사소한 기록들이 차곡차곡 모여, 어느 순간 마음에 켜진 작은 촛불이 되어줄 것입니다. 당신이 내딛는 그 가장 가벼운 발걸음 옆에, 제가 늘 조용히 걸음을 맞추며 함께 서 있겠습니다. 조금씩, 우리만의 온전한 속도대로 이 작은 불씨를 함께 키워가 보아요.
“그래, 거창하지 않아도 좋으니 이것부터 시작해보자.”